요즘 들어 한국의 사회문제로 재기되고 있는 외모 지상주의는 외모가 개인간의 우열과 성패를 가름한다고 믿어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회 풍조를 일컫는다. 이로 인해 너도나도 외모를 가꾸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게 됐고, 이른바 ‘성형 열풍’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는데, 그 중 단연 가장 큰 원인은 대중매체의 영향이라고 본다. 케이블 티비, 인터넷은 물론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대중매체를 접근하는 것이 더욱 쉬워짐으로써 사람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상업적 방송들을 접하게 되었다. 광고주들은 외모가 출중한 연예인들을 자신의 광고에 출현시킨다. 이는 그 상품에 대한 광고효과를 위한 것이지만, 사람들의 모방심리를 자극하게 된다. 연예인들이 본인의 성형 사실을 공개하고 그것을 당당하다고 표현하며, 말초적인 관심사를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아직 비판적인 시각을 갖지 않은 미성 세대는 대중매체로부터 쉽게 영향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배우 신은경이 양악 수술로 인해 부드러운 인상을 갖게 되자 불과 며칠 사이 많은 네티즌들은 본인도 양악 수술을 고려하게 됐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그뿐 아니라, 컴퓨터에서는 본인의 얼굴을 원하는 데로 고쳐볼 수 있는 기능을 통해 누구나 쉽게 ‘얼짱’이 될 수 있다는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얼짱’들은 단지 외모만으로 유명해지게 되었고, 이들을 소개하는 인터넷 카페도 수십 개가 생겨났다.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욕망과 첨단 기기의 고급화가 맞물려 얼짱 문화의 가속화를 촉진하고 있다.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살펴보면, 물질적 여유와 여가시간의 증가도 하나의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예전 한국은 농경사회 (채취사회) 였다. 먹고 살기에 급급했던 당시의 육체는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그러나 산업화가 되고 물질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육체의 웰빙 (well-being)까지 신경 쓰게 되었다. 노동계급이 아직도 육체를 노동의 목적으로 쓰는 데에 반해 소위 말하는 지배 계급이 삶의 가치를 ‘무엇을 해야 할까’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하고 질적인 데에 두게 되었기 때문이다. 웰빙은 원래 행복, 안녕, 복지 등 건강하고 안락한 인생을 살자는 의미, 즉 삶의 질을 향상 시키자는 의미에서 생겨났으나, 그 의미가 변화하여 외모가 출중해야 삶의 질이 향상 된다는 식의 주장이 생겨나고 있다 . 이는 외모가 자기만족 뿐만 아니라 취업, 승진등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경제적인 능력과도 무관하다고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심지어 요즘 ‘외모는 곧 사회적 지위’라는 식의 사고방식이 세대를 불문하고 만연되고 있다. 가장 유명한 예로, ‘선풍기 아줌마’로 알려진 한미옥씨는 예전에 아름다운 미모로 가수 생활까지 했지만 본인의 외모에 만족하지 못하고 지나친 성형으로 인해 얼굴이 변형되고 2배로 커지면서 성형중독의 무서움을 알리는 존재가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한미옥씨가 빼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성형 수술을 한 이유가 연예인 대부분이 성형 수술을 하기에 자신이 성형 수술을 하지 않으면 남들보다 뒤쳐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웰빙의 의미를 벗어나 지나치게 외모를 중시하는 현재 한국 사회의 풍조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영국 신문 ‘인디펜던트 (Independent)’ 2007년 8월 12일자 판은 ‘잘생긴 사람이 직장에서 외모가 별로인 사람들에 비해 평균 12%를 더 번다’고 보도했다. 외모가 중요시되는 것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라고도 할 수 있다. 서구사회에서 이렇듯 외모에대한 관심을 보인 것은 경제적 시간적인 여유를 통해 추구되는 삶의 질의 상승이라는 사회적 현상의 하나로도 볼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이 지나쳐 성형이나 외모에 대한 집착이 다른 가치있는 것들보다 중요시되고 우선시 될 때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외모를 가꾸고 미를 추구하는 것은 부정적이기만 한 것일까? 사람들은 외모 지상주의를 논할 때 대개 거부감을 먼저 보인다. ‘외모 지상주의’ 자체가 ‘외모에 집착을 한다’는 부정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인 만남에 있어서는 상대방의 내면까지 파악할 기회가 쉽게 주어지기 힘들기 때문에 처음에 보여지는 외모가 중요시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본다. 외모 지상주의가 도덕적인 현상인지에 대한 의견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람들은 외모가 뛰어난 사람에게 끌리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외모도 지(知)나 부(富)와 같이 사람의 매력중 하나이고, 사람간의 대면이 아예 사라지지 않는 한 ‘외모’라는 매력은 늘 부각될 것이다. 그러므로 외모를 중시하는 풍조가 사라지는 것은 힘들다고 생각한다. 뛰어난 외모에 끌리는 것은 인간들의 본능이고, 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 존재를 인정하되, 건전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그 도가 지나치지 않도록 조율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또, 대중 매체에 나오는 사람들은 공인으로서 본인의 행동과 발언에 책임을 느낄 필요가 있다.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하며 그 중에는 미성년자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대중매체의 영향, 물질적 시간적 여유 등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생겨난 외모 지상주의. 이 사회적 풍조는 어찌 보면 빠르고 쉽게 변화하는 우리사회의 공허함 보여주는 단면일 수도 있다 . 지나치게 외향적인 것만 좇게 되면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이르기 쉽고 ,이는 정신적 질병과 심지어는 자살이라는 또다른 사회문제도 야기시킬 수 있다. 그러나 너무 외모에 자신감이 없게 되면 본인도 모르게 위축되고 자신이 하는 일에도 자신감이 없어지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며 자신의 분야에서 능력을 계발하고 발휘하는 것을 우선시하며, 물질과 외형보다는 내면의 능력과 아름다움이 만족의 기준이 되도록 생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복잡하고 다양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내게 필요한 것만을 선별하여 받아들이고, 본인의 외모를 아름답게 가꾸면서도 자신의 인격과 능력, 지혜로움 등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려는 노력의 조율이 더욱 필요하다.